18세의 새댁 꽃봉우리가 필듯 말듯한 수줍은 나이의 밀양박씨 문중에 귀동딸 박정숙 여인은 평산신씨 문중 신경균씨와 귀밑머리 마주풀고 혼례를 올렸다. 대례상 밑으로 초사흩날 실눈을 뜨고 살짜기 신랑의 모습을 본 박정숙 여인은 귀밑이 발그레 달아올라 더욱 예쁘게 보이던 새댁의 분홍빛 첫사랑의 달콤한 나날은 꿈결같이 흘러갔다. 어느덧 낙엽이 지고 찬서리가 내리는 가을이 되었다. 남편 신경균씨는 안색이 좋지 않은 채 일터에서 돌아왔다. “서방님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안색이 좋지 않으신데요.” 힘없이 자리에 눕는 남편을 부축하는 박정숙씨의 마음에는 검은 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남편의 병구환으로 밤을 지새워도 병은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가고 창백해지는 얼굴에 음푹한 눈속에서 새어 나오는 눈물방울은 박정숙 여인의 가슴에 얼음가루를 뿌리는 듯했다. 백방으로 약을 구해 정성을 다했으나 신경균씨는 결혼한 그해 겨울 숨지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듯 눈 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찢어지는 서러움을 못이겨 스스로 자결할까도 하다가 자식도 없으니 묘소나마 돌보아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져먹고 매일 남편의 묘소를 찾았다. “에이그, 꽃봉우리 같은 나이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청상과부가 되었으니 저 일을 어쩌노.” 마을 부인네들까지 애석해서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자식도 없는데 개가를 해야지, 저 꽃다운 나이를 썩혀 뭣하겠수. 지금 당장이야 남의 이목도 있고 다만 몇달 살았어도 내외간인데 3년상이나 넘어야 팔자를 고치지.” 마을 부인들의 입에는 박과부의 얘기가 오르내렸다. 3년상을 넘긴 어느날 “아가야 내 네게 긴히 할 말이 있으니 사랑채로 오너라”시아버님이 부르셨다. 방금 남편의 묘소를 돌아보고 온 눈에는 채 눈물기가 마르지 않았다.
“아가, 내 이런 말을 해서 네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차마 너를 그냥 두고 볼수가 없어 이르는 말이니 노여워 말아라. 네나이 금년 스물하나. 내집에 시집와서 자식낳고 잘 살지 못하고 혼자 몸이 되었으니 내죄 또한 크구나. 네가 내집에 살면 내 마음이 더 불편해. 너도 내 자식인데 네 갈길을 가야지. 개가 하거라. 그것이 좋을 것이다.”, “아버님, 무슨 말씀이옵니까? 저더러 이부종사하라 십니까? 남편 잃은 것도 죄악이거늘 두 남편을 섬기시라니 저더러 더 큰죄를 지으라 함이신가요?”, “아가 왜 너를 이집에서 쫓아내려는지 시아비의 뜻도 알아야 하느니. 어서 군말 말고 내뜻을 따라라.”, “아버님 제 서방도 없는데 시부모님은 누가 모십니까? 정말 그 뜻을 굽히지 않으시면 저도 이 집에서 죽어 혼이라도 이 가문에 남으려 하옵니다.” 박정숙 여인의 뜻을 꺾지 못한 시부모는 며느리를 자식같이 사랑하며 살게 되었다. 시부모를 모시고 꽃다운 젊음을 보낸 박열녀는 시부모님이 돌아가지자 여성교육에까지 뜻을 두고 여인네들에게 여성의 법도와 정절을 주장하며 자식없이 생활하다가 90세의 노구를 이끌고 한 많은 여인의 일생을 마쳤다.
13-06-10 16:11